죄와 벌 - 인물들의 사상이 흥미로웠던 소설


"그건 내가......" 하고 라스콜리니코프가 말을 꺼냈다.

"물좀 드십시오."

라스콜리니코프는 한 손으로 물을 밀쳐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끊어가며, 그러나 뚜렷이 말했다.

"그건, 내가 그때, 관리인 미망인 노파와 그 동생인 리자베타를 도끼로 죽여 금품을 훔친 겁니다."

일리야 페트로비치는 입을 딱 벌렸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기의 진술을 되풀이했다.





누가 나에게 정말 좋아하는 책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갯수가 너무 많아 제대로 꼽을 수 없을 거다. 하지만 그 목록을 만들라면 길어지긴 해도 어떻게는 추려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목록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넣어버릴 수 있는 책이, '죄와 벌' 이다.



나에게 있어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는 우중충한 그레이톤이다. 덕분에 읽는 기간 내내 뭐에 홀린 것처럼 멍 하니 있거나 축 쳐져있기도 했다. 읽다보면 회색 하늘 아래 갈색 건물들과 가난하고 더러운 거리들이 군데 군데 보이는 페테스부르크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저분한 거리, 가난한 옷차림의 사람들. 그들의 얼굴은 대부분 일그러져있다. 그러한 괴로움 사이에서는 새로운 사상이 샘 솟듯 발견되지만, 현재로써는 더욱 혼란을 야기하는 듯 보이기도 하다.

이런 우울한 도시를 배경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하지만 유망한 한 청년 -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초점을 맞춘다.

라스콜리니코프라는 가난한 전(前)대학생이다. 훤칠한 미형의 얼굴에 영리하고 재능있고, 나름의 신념도 있어 잘만 하면 앞으로 무언가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다. 단지 가난에 쪼들린다는 것이 그의 장애다. 대학에 다닐 때에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열심히 생활한 모양이지만 소설이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는 학비를 충당하지 못해 휴학을 신청하고, 그 뒤 돈을 벌기 위해 하던 가정교사 일도 때려치고 하릴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대상은 몽상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이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생각에만 몰두한다. 다른 이들이 어찌 되건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실제로 그는 그의 친구들이 그를 걱정해 이것 저것 챙겨줄 때 오히려 그러한 배려를 귀찮아하고, 다른 이들의 마음은 생각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자존심은 또 얼마나 강한지, 다른 이들을 경멸하는 태도도 자주 보인다. 때로는 히스테릭한 양상도 나타나 자신의 생각을 되는대로 지껄이거나 좀처럼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횡설수설 한다. 스스로의 이상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결국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젊은 인재. 그 정도가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그가 때때로 보여주는 선행은 그가 어느 정도의 선천적 선함을 지니고 있지 않나 싶게 만든다.



소설 첫 부분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그의 행적을 추적함과 동시에 어떠한 계획을 말해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단지 라스콜리니코프가 한달 간 고심하며 이것 저것 완벽하게 - 적어도 그의 생각에는 - 세운 계획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것이 딱히 무엇인지는 집어 말해주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며 라스콜리니코프의 생각들을 추적하다 보면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것은 여러 사람의 물건을 악독하게 저당잡는 노파를 살해하는 계획으로,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느 날 저녁 노파의 동생이 집을 비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일을 실행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계획을 실행시키는 것을 보면 허점투정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를 죽이고 금품을 챙기는 데에 문을 잠그지 않았고, 때문에 나중에 들어온 노파의 동생마저 죽여야 했다. 뿐만 아니라 뒤늦게 빗장을 잠근 것은 노파와 만날 약속이 되어 있던 이들에 의해 누군가가 그 시간에 노파를 죽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말았다. 그가 모습을 들키지 않고 그 건물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영양부족과 노파를 죽이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한 달간의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열병으로 앓아눕는다. 자신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던 상황에서 용케 금품을 감추고 피 묻은 옷을 처리하지만 그대로 자신의 방에서 앓아누운 그는 며칠이 지나서야 제정신을 회복한다 - 설령 그게 다른 이들에게는 여전히 비정상으로 보이더라도 말이다. 그는 정신을 차린 뒤에 잡힐 거라는 두려움과 살인의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행동을 이리저리 달리 하게 되는데, 그의 사상은 그를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자신이 옳았다는 생각에 빠져 다른 이들은 정말로 신경쓰지 않게 되어버렸다.

책의 뒷표지에 씌여있는 대략적인 소개에서는 후에 라스콜리니코프와 연인이 되는 소냐를 '이 작품에서 희망을 발하는 유일한 인물' 이라고 써놓았지만 내 개인적인 취향 탓에 나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어떻게 소냐에 의해 구원되느냐 보다 작품 속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각자 생각이나 사상과 그것들이 서로 충돌하는 모습이 훨씬 흥미로웠다. 특히 라스콜리니코프와 예심판사 포르피리 페트로비치의 논쟁을 통한 심리전은 죄와 벌을 읽어본 이라면 감탄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흥미를 가지고 읽어내려갔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비범한 사람은 권리를 가졌는데 그 권리란 공적인 권리가 아니고 자기 양심을 뛰어넘어......어느 장애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위해서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될 경우에 처하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제까지의 인류를 위한 건설자나 은인들은 모두가 도살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러한 광적인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라스콜리니코프가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한 첫 걸음' 이나 '자신을 이겨내는 것' 따위를 위해 노파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상 사람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몇 생명의 희생으로 인해 한 사람이 영원토록 인류에 커다란 도움이 될 일을 하게 된다면, 그 희생은 용납되지 않을까 하고.

"살아 있을 때 승리를 얻는다는 말씀이지요? 물론입니다. 살아 있을 때 목적을 달성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때는......"

"도리어 그가 스스로 사람을 처벌하기 시작한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필요하다면......아니, 대부분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허나 그것은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들이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들은 그저 시대의 흐름을 타고 가다보면 어쩌다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까 싶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말하는 '비범한 사람' 이라는 기준이 애매모호 할 뿐더러, 그 비범하다고 판단된 사람에 의해 희생된 자들 중 더욱 비범한 자가 없었을 거라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면, 그러한 일은 절대 윤리적이지 못하다.

라스콜리니코프도 이러한 자기 사상의 허점들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때문에 계속되는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이고, 그닥 특별한 이유도 없으면서 소냐를 계속 찾아갔을 것이다. 소냐는 작품 속에서 황색 감찰 - 창녀의 표식 - 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깨끗한 인물은 별로 안좋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라스콜리니코프를 빛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나타났어야만 했던 인물은 그녀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그녀가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그토록 빠져드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쩄거나 그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가 저지른 과실마저 포용하고, 결국 라스콜리니코프를 그가 본래 빠져있던 음침한 자기 중심적 세계에서 다른 이들과 공존하는 또 다른 세계로 이끌게 된다.



여기서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에 대해서만 말했지만, 그의 절친한 친구인 라주미힌이나 그 외의 인물들의 사상, 또는 소냐의 양어머니인 카테리나 이바노브바의 히스테릭한 모습도 상당히 관심을 모은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라스콜리니코프의 여동생인 두테치카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좌절하고 권총자살을 하는 모습은 라스콜리니코프가 스비드리가일로프와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었음에도 소냐의 도움으로 구원받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는데, 이것은 나의 흥미를 끌었을 뿐더러 또한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도 했다.



하지만 내가 '죄와 벌' 에 특히 더 빠져들어 읽었던 이유는 이 작품이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적 변화를 탁월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 세운 이상과 도덕적 윤리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모습은 혼란스럽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그의 상태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특히 에필로그 전의 마지막 장면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수하러 경찰서에 갔다가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자수를 포기하고 나오지만, 경찰서 밖에서 그를 보고 있던 소냐를 보고, 일그러진 미소와 함께 힘겹게 자수하는 것은 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지며 그때 그의 기분이 어렴풋이나마 느껴지기도 한다.



'죄와 벌' - 필연적인 관계이지만 절대 같은 목적을 향할 수 없는 두 개념.

제목이 말해주듯, 신을 대신해 벌을 내리려 한 라스콜리니코프는 그 과정에서 죄를 저지르고, 그 역시 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벌이 끝난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출발이 있다고들 한다. 라스콜리니코프 역시 자신의 사상의 괴로움 속에서 소냐에 대한 사랑을 찾고, 자신의 속죄와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를 시작한 순간,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by 월천군 | 2008/08/15 11:41 | 트랙백 | 덧글(0)





음양사 - 고혹적인 어둠이 매력적이었던 세계, 헤이안




"안 갈 텐가?"
"으, 음."
"가세."
"가세."
일은 그리 되었다.

 

 

우아하고 멋스럽고 음침한 어둠 속을,
바람에 떠도는 구름처럼 표표히 흘러간 남자의 이야기




점심은 넘기었으나 아직 저녁이 되기에는 이른 시간. 두 사내가 툇마루에 앉아 술을 들이키며 정원의 경관을 즐기고 있다. 손질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 제멋대로 자랐으나 그 나름의 운치가 있는 정원을 두 남자, 아베노 세이메이와 미나모토노 히로마사는 마음껏 즐긴다.

이곳은 아베노 세이메이의 집. 계절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는 정원은 언제나 그 나름의 멋을 뿜어내고 있다. 그 광경을 떠올리자면 세이메이와 히로마사가 조용히 풍류를 즐기며 말 없이 술을 들이키는 장면 역시 연상이 된다.

집 안에는 그 둘의 기척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 넓은 집에 오직 두 남자만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세이메이가 부르고자 하면 그가 부리는 여러 식신들이 모습을 나타내곤 한다.

식신이 준비해준 안주와 술을 조용히 들이키다, 히로마사가 나즈막히 말을 꺼낸다. 그것은 이 성격 좋고 정직한 사내가 스스로 느낀 무언가일 수도 있고, 그가 어디에선가 듣고 온 기이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다른 이의 부탁을 받아 세이메이에게 음양의 일을 부탁하려는 일일 것이다. '좋은 사내' 미나모토노 히로마사는 다른 이들의 부탁을 쉽사리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아베노 세이메이 - 일본 최고의 음양사라는 이 사내는 그런 히로마사의 말을 입가에 미소를 띄며 듣는다. 키가 훤칠하고 피부가 희며 입술이 붉은 남자. 히로마사와 비슷한 나이인 것 같지만 외모만 보고서는 쉽사리 판단할 수 없다.

히로마사가 정좌를 하고 등을 펴고 곧게 앉아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세이메이는 아무렇게나 앉아있다 - 오른쪽 팔꿈치를 오른쪽 다리에 대고, 그 손 위에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여유롭고 나태해 보이기까지 한다.

히로마사의 이야기가 끝나면, 세이메이는 주를 거론한다. 히로마사가 듣기에는 도무지 모를 말들이다. 허나 그렇게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이 남자는 세이메이가 "가세," 하고 말하면 "가세"하고 답한다. 그렇게 그들은 헤이안의 기이함과 만난다.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들은 상당히 대중적이다. 음양사를 제외한다면 작가를 안다고 할 정도로 그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의 소설들은 한 마디로 "재미있다". 음양사 역시 대중적인 면이 상당히 드러난 작품으로, 헤이안이라는 다소 생소하지만 흥미가 동하는, 거기에 신비로움이 살짝 겸해진 배경과 누구나 끌릴 법한 요괴들의 이야기로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일본 최고의 음양사였다는 아베노 세이메이. 그 이름은 아직도 전해져 일본의 음양사라는 것을 그다지 모르는 사람들도 한번 즈음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헤이안이라면 꽤나 오래전의 세계. 한반도는 삼국시대를 겪고 있었을 터였다. 유명한 음양사였다고는 하나 딱히 귀족이나 황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도 아닌데 그에 관해 전해 오는 이야기들이 꽤나 많은 것을 보면 그는 과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 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이러한 인물이 신비로 둘러싸인 헤이안의 밤길을 거니는 모습은 그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그것에 세이메이와 히로마사가 맞닥뜨리는 기묘한 이야기들 역시 재미있다. 재미있다고는 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흥분을 느끼게 하거나,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해 애타게 하거나 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닥 거창하지는 않으나 때로는 잔잔한 유쾌함을, 때로는 고즈넉한 멋을, 그리고 어느 때에는 안타까운 슬픔을 지니고 있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음양사를 읽다 보면 어느새 헤이안의 저녁, 또는 밤을 떠올리게 된다. 소설 속에서 주로 나오는, 소를 모는 이 없는 우차에 세이메이와 히로마사가 올라타고 세이메이의 집에서 꺼낸 이야기의 실제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믐달이 뿌옇게 그 빛을 내리는,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밤길에 우차의 바퀴 소리만 나지막히 울려 퍼진다. 우차 안을 들여다 본다면 히로마사는 약간 굳어있고, 얼굴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긴장감이 어려있으리라. 그 옆에 앉은 세이메이는 역시나 대조적으로 여유로운 자세에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을 것이다. 얼굴이 굳은 히로마사를 보고 피식 웃어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런 세이메이의 태도 때문일까. 소설에서는 전체적으로 '다급함'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 여인이 복수를 위해 귀신이 되기를 빈다는 이야기에서도 다급함보다는 서서히 다가오는 소름에 몸이 쭈뻣해진다. 서로를 향해 "가세" 라고 말하는 두 남자의 말은 도저히 귀신 퇴치를 위한 것 같지 않다. 그저 어디 산보라도 나가는 듯한 느낌. 소설의 장면 하나 하나를 상상하고 그 풍경을 음미하며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인 것이다.

소설에 따르자면, 헤이안은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아 형체가 뚜렷이 보이지 않고, 무언가 보인다 싶어 잡으려 하면 허깨비를 잡은 듯 허공을 휘젓게 되는 세계. 그러나 드문 드문 구름 사이로 달이 고개를 내밀고, 잔잔하면서도 우아한 피리 소리가 공기를 타고 널리 퍼지는, 그리하여 오히려 어둠의 풍류를 즐기게 되는 세계.

그래서 난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여유롭고 느릿한 문체를 읽고 있으면 기이하고도 매력적인, 그리고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음침함이 깃든 헤이인의 세계가 다가오는 듯 하다. 그 길가에서 요괴를 맞닥뜨리면, 그 뒤편에 하얀 기리기누를 걸친 아베노 세이메이가 어딘가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을 것만 같다.

by 월천군 | 2008/08/14 23:28 | 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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